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억만장자 하워드 마크스의 시선

입력 2022-03-31 18:16   수정 2022-03-31 18:20

이 기사는 03월 31일 18: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하워드 마크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사진)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오프쇼어링을 떠올렸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생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은 코로나19를 거치며 글로벌 공급망 차질을 빚게 했다. 예를 들어 셧다운으로 인해 반도체 공급이 줄어들자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은 급감했다. 플레이스테이션5 같은 제품도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마크스 회장은 공급망 차질 문제와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이 에너지 수입을 러시아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푸틴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제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필수품 조달을 적대적인 주변국에 의존한다는 선택은 마치 은행 금고를 만들고는 범죄 조직에 경비 인력 공급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오프쇼어링 문제와 유럽의 에너지 의존은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문제 모두 한 국가가 필수 자원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데서 공통점이 있다는 게 마크스 회장의 말이다. 유럽은 보다 친환경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묵인했고, 미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자원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크스 회장은 국제 정세를 시계추에 비유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시계추처럼, 국제 정세는 하나의 지점에서 반대 지점으로 이동하는 진자운동이라는 설명이다. 과거 정세가 비용 효율화를 위한 오프쇼어링으로 움직이는 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자급자족을 위한 리쇼어링으로 움직이는 운동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자들에게도 투자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 하워드 마크스는 미국 부실채권 전문 사모펀드사인 오크트리캐피털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오크트리캐피털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1500억달러(약 170조원)에 이른다. 마크스 회장은 시장이 좋을 때는 관망세를 보이다가 환경이 악화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시장역행투자자(contrarian)로 유명하다.

아래는 마크스 회장이 지난 23일 오크트리 고객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메모의 전문.

제 메모와 책을 꾸준히 읽어 온 독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저는 집착이라 할 만큼 시계추(pendulum)의 개념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제가 작성한 글을 일부만 열거해도 아래와 같습니다.

? 1991년 4월에 작성된 두 번째 메모에는 ‘1분기 성과(First Quarter Performance)’라는 창의적인 제목이 달렸습니다. 이 메모는 행복감과 우울감, 긍정적인 상황 전개에 대한 찬미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집착, 그로 인해 가격이 과도하게 높은 자산과 가격이 과도하게 낮은 자산 사이를 오가는 증권시장의 움직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2011년 3월에 작성된 ‘규제에 관해(On Regulation)’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한 규칙 제정의 전망에 대해 다뤘습니다. 향후 상황은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pendulum)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태도의 변화에 따라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저의 예측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는 “시장은 규칙으로 구속받지 않을 때 국가에 가장 이익이 된다”는 입장과 “참여자들의 부정 행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정부가 필요하다”는 입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2013년 8월의 메모 ‘신뢰의 역할(The Role of Confidence)’에서 저는 펀더멘털의 변화가 투자자 신뢰의 변화(종종 도가 지나친)에 의해 어떻게 시장 변동성으로 바뀌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 그리고 2018년에 발간된 제 저서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Mastering the Market Cycle)에서는 경제, 기업 이익, 신용 가용성 등의 다양한 사이클에 대해 논하던 중 사이클이 아닌 시계추(pendulum)에 비유해 투자자 심리의 변화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심리가 너무 빈번하게 한 극단이나 반대쪽 극단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그리고 ‘행복한 중용’에서 보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저는 심리의 영향을 받는 그 어떤 것의 추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시계추(pendulum)만 한 비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투자만이 아니라 말이죠.

사람들은 1990년에 제가 처음 메모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종종 묻곤 합니다. 저의 첫 메모 ‘성과 달성의 경로(The Route to Performance)’에는 제가 짧은 시간 안에 목격했고 그것들을 연이어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의견을 형성할 수 있었던 두 사건들이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 동안 표면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 제가 감지했던 연관성이 많은 메모들의 탄생 배경이 됐습니다.

최근 열렸던 브룩필드자산운용 이사회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국제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이자 제가 ‘경제적 현실(Economic Reality)’(2016년 5월)이라는 메모에서 처음 다뤘던 오프쇼어링(offshoring)과의 연관성이 대두됐습니다. 이번 메모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됐습니다.

배경

브룩필드 이사회 회의의 첫 안건은 자연히 우크라이나의 비극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적 측면에서부터 경제적, 군사적, 지정학적 측면에 이르는 이 사태의 많은 양상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볼 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측면 중 하나가 에너지입니다. 러시아에 크게 의존해 에너지 수요를 해결하고 있는 유럽의 현실이 비양심적인 행위를 자행한 러시아를 응징하고자 하는 욕구의 실행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의 석유수요의 약 1/3, 가스 수입량의 45%, 석탄의 거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대체 에너지원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출 금지를 통해 러시아를 제재하는 것은 유럽의 에너지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초래할 것입니다. 이 공급을 축소하는 것은 시기와 관계없이 어렵겠지만, 가정에 난방이 필요한 이맘때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최대 수출 품목이자 최대의 경화 창출원(제가 보는 수치로는 월 200억달러)이 제재하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재를 시행할 경우 우리 동맹국들이 심각한 고초를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에너지 상품 판매에 예외를 적용합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경제적·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과정을 대단히 복잡하게 만듭니다.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제재를 사용할 경우 유럽의 상당한 희생이 요구될 것이므로 단지 그러한 제재가 아닐 뿐, 실제로 우리는 반드시 제재를 통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다루겠습니다.

제가 주목한 다른 주제인 오프쇼어링은 유럽의 에너지 의존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한 해 정도의 기간 동안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 주요 추세 중 하나이자 흔히 현재의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는 요인은 최근 그 취약점이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주로 생산 기지를 다시 국내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공급 라인의 단축과 신뢰도 향상을 꾀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수십년 동안 많은 산업들이 생산 설비의 상당 비율을 해외, 주로 아시아로 옮김으로써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비용을 줄였습니다. 이 추세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신흥국들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한편, 제조 기업들과 수입 기업들의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여 주었으며 소비자들에게는 저렴한 상품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데다가 세계의 생산 능력 중 상당 부분이 폐쇄되어 공급이 한껏 부양된 미국 경제에서 늘어난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자 이 추세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언뜻 보기에 유럽의 에너지 의존과 공급망 차질이라는 이 두 가지는 모두 국제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 외에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문제를 나란히 두고 비교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메모를 쓸 만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산 에너지

2019년, 러시아의 4대 수출 품목은 원유, 정유, 석유 가스, 연탄이었습니다. 경제복합성관측소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에 따르면 이 품목들의 수출 규모는 총 2230억달러로 러시아의 총수출액 4070억 달러의 55%를 차지했습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러시아는 에너지 상품 수출을 통해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극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유럽은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그 격차를 수입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생산량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남는 에너지로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쉘렌버거에 따르면

<i>푸틴이 러시아의 석유 생산을 확대하고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고 그에 이어 귀한 가스를 더 많이 수출할 수 있도록 원자력 생산량을 2배로 늘리는 동안, 독일을 필두로 한 유럽은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가스전을 폐쇄했으며 수압파쇄(프래킹) 같은 선진 공법을 이용한 에너지 개발 확대를 거부했다.

수치를 통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유럽연합(EU)이 소비한 천연가스의 30%가 러시아산이었다. 2018년에는 이 수치가 40%로 뛰었다. 2020년에는 44%에 육박했고 2021년 초에는 거의 47%에 달했다. </i>

다음 차트가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1980년, 러시아산 수입 규모는 유럽의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의 1/3 미만입니다. 유럽의 생산량은 약 20년 전에 정점을 찍은 후 거의 절반으로 감소해 1980년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같은 40여 년의 기간 동안 러시아로부터의 수입량은 3배로 증가해 이제 유럽의 생산량과 거의 같은 수준이 됐습니다.



쉘렌버거는 에너지 상품 수입, 특히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이처럼 극적으로 높아진 것은 유럽이 국내에서 생태학적으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원유와 가스 생산을 제한한 것 외에도 일부 국가들(특히 독일)은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지 않거나 환경 친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양보로서, 아마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대규모의 전력 생산을 제공함으로써 가장 우수한 에너지 방안을 제공할 수 있을 원자력 발전의 사용을 축소했습니다. 쉘렌버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i>새 천년이 시작될 무렵, 독일 전기의 약 30%가 원자력으로 생산됐다. 그러나 독일은 신뢰성 높고 저렴한 원자력 발전소들을 폐기해 왔다....... 2020년까지 독일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에서 11%로 줄였다. 그러더니 2021년 마지막 날, 남아 있던 6개의 원자로 중 절반의 가동을 중단했다. 나머지 다른 3개의 원자로는 올해 말 가동이 중단될 계획이다. </i>

이번 달 초에 있었던 브리핑에서 한 미국 상원의원은 비당파적인 정치 단체 No Labels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i>“‘푸틴의 전쟁’과 관련된 에너지 문제는 에너지, 기후, 안보, 경제(국가와 가계 차원 모두)의 4개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i>

독일이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한 심의에서 안보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4개 요소 중 하나, 즉 기후만이 독일의 결정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필수품 조달을 적대적인 주변국에 의존한다는 선택은 마치 은행 금고를 만들고는 범죄 조직에 경비 인력 공급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해외 소싱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현실의 부정적인 이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최근에서야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소싱과 제조의 해외 이전은 수십 년 동안 우려의 대상이 되어 온 문제입니다.

몇백 년 전을 떠올려 보면, 운송의 제약 때문에 생산은 소비 지점 부근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철도가 등장하면서 생산과 소비 지점을 수백, 심지어 수천 마일 떨어진 곳으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점은 이전까지 현지 고객들과 가까운 곳에서 제조되어야 했던 식품과 건축 자재 등의 상품들을 국내 전역에 공급하는 전국 단위 기업들의 탄생에 중요한 요소였음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노동력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거나 특화의 이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곳에서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전 세계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항공 화물 및 컨테이너 수송의 등장에 힘입어 국가 간 교역의 급격한 성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은 값싼 노동력과 제품 조립 기술을 발판으로 전자 제품과 자동차의 주요 수출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제품들은 비용 경쟁력이 뛰어났고 처음에는 품질이 좋지 않았으나, 오래지 않아 일본은 세계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브랜드들을 개발했습니다. 1950년대 말,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그저 매년 수백대 정도만을 미국에 수출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울 것은 저렴한 가격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매력적인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품질은 향상됐고, 1980년대 초에는 레이건 행정부가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호 조치로서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게 대미 수출 규모를 연 168만 대로 ‘자발적으로’ 제한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낮은 제조 비용의 유혹에 이끌린 제조 기업들이 일본에서 여타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습니다. 중국으로의 대대적인 이전은 1995년께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티셔츠, 청바지 같은 저부가가치 상품들의 생산은 베트남,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으로 옮겨졌습니다. 각국이 제조업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동안 노동력 공급은 부족해졌고 근로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1인당 소득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산층이 확대되고 내수가 증가했습니다. 한 국가의 임금이 상승하면 저비용 제조국이라는 역할은 다른 국가들로 넘어갔습니다. 임금 상승은 국부적으로 발생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저마진, 저숙련 노동력을 찾는 기업들의 관심이 새로운 저비용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시아의 저비용 생산 능력은 곧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a)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고 (b) 자신들을 대신해 제조를 담당할 아시아 계약 업체들을 고용함으로써 이런 아시아의 장점들을 활용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엄청나게 낮은 임금과 취약한 근로자 보호 제도 때문에 미국에서는 용인되지 않을 장시간 근로와 열악한 근로 환경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외국 근로자들에게는 일자리 증가, 생산 설비가 위치한 국가들에게는 경제 성장, 미국의 수입 기업들에게는 경쟁력 향상,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저렴한 상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오프쇼어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이 경험한 낮은 물가상승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인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 deflator)는 1995년(중요하게도 중국의 대미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점)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1.8%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물가상승률은 이 수준에서 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사실 재계와 정부 내에서는 물가상승률이 좀 더 높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사실이 드러납니다.



문제의 25년 기간 동안 내구재 가격이 40% 가까이 하락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해외에서 생산된 자동차, 가전, 가구 같은 제품을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4반세기 동안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완만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내구재의 가격이 실제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의류 같은 품목의 값싼 수입품들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순수입국들에게는 이것이 세계화의 중요한 혜택이었습니다.

반면, 오프쇼어링은 또한 미국 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증발시켰고, 미국 내 제조업 중심 지역과 중산층의 공동화를 야기했으며, 아마도 민간 부문 노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i>예컨대, 포드는 1992년에 종업원의 53%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근무한다고 보고했다. 2009년이 되자(포드가 멕시코로 사업을 확장한 후) 포드의 북미 지역 직원 수는 전체 직원의 37%에 불과했다. (더위크(The Week), 2015년 1월 11일)</i>

자본주의는 소득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합니다. 세계화는 비용이 가장 적은 곳에서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두 강력한 세력의 결합이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반도체가 이런 추세의 탁월한 사례입니다. 트랜지스터, 집적회로, 반도체 등 전자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발전 중 다수가 벨연구소, 페어차일드반도체 등 미국 기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90년, 미국과 유럽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했습니다. 2020년에는 이들의 점유율이 겨우 20% 정도인 것으로 추정됐습니다(보스턴컨설팅그룹 및 반도체산업협회 데이터). 대만(TSMC를 선두로 한)과 한국(사실상 삼성)이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반도체 최대 생산국으로 올라섰습니다. 오늘날,<i> “TSMC와 삼성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현재 가장 진보한 5나노미터 칩의 생산 능력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다.” (비주얼 캐피탈리스트(Visual Capitalist))</i>

그 결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i>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으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경제가 재개되면서 칩 수요는 계속해서 급증해 왔다. 이로 인한 칩 부족 사태가 긴 리드 타임으로 여러 산업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반도체 발주에서 납품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의미하는 리드 타임은 현재 사상 최장 수준인 22주에 달한다.

칩 부족 사태는 반도체 기업들에게 희소식이지만 다운스트림 기업들은 고전하고 있다. 2021년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자동차 생산량은 770만 대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2100억 달러의 매출액 손실을 의미한다. 플레이스테이션 5 같은 인기 제품들의 공급 부족으로 가전 부문 역시 타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비주얼 캐피탈리스트)</i>

공통점

그래서, 이 두 문제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미국 기업들의 해외 소싱, 특히 반도체와 관련한 해외 소싱은 여러모로 유럽의 에너지 비상사태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두 문제 모두 스스로가 다른 국가나 기업에 의존적이 되도록 허용한 국가나 기업이 요구되는 필수품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 기술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려할 때 ? 오늘날 감시, 통신, 분석, 운송 측면에서 전자 장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 이러한 취약성은 어느 시점엔가는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의존했던 EU가 겪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세계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휘말렸을까요? 유럽은 어떻게 러시아산 에너지에 그토록 의존하게 됐으며, 어떻게 미국에서 사용되는 반도체와 기타 상품들 중 그토록 높은 비율의 상품이 해외에서 생산되게 됐을까요? 유럽이 보다 환경친화적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묵인한 것처럼, 미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소재, 부품, 완제품에 나날이 더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수십년 동안 발생한 핵심적인 지정학적 변화 중에는 (a) 운송과 통신의 개선으로 인해 세계가 작아지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b) 다음 요인들에 기인하는 세계의 상대적인 평화가 있습니다.

? 베를린 장벽의 붕괴
?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 체감되는 핵무기 위협의 감소(핵무기의 사용 시 상호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자각 덕분)
? 다국적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분쟁의 부재
? 사람들로 하여금 유리한 여건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 믿게 하는 나쁜 기억력

이러한 변화들이 세계화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 간 상호의존성의 방향으로 시계추(pendulum)를 큰 폭으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기업들과 국가들은 해외에서 해결책을 찾음으로써 엄청나게 많은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잠재적 위험을 간과하거나 축소하기 쉬웠습니다.

그 결과, 최근 수십 년 동안 각 국가와 기업은 가장 싸고 쉬운 그리고 어쩌면 가장 환경친화적인 해법으로 보이는 길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한 선택 중에는 원거리의 공급원에 대한 의존과 적시주문이 포함됐습니다.

(잠시 본론을 벗어나, 저는 경제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쳐진 국가들에서 환경 보호, 엄격한 안전 및 근로 기준, 친환경적 행위가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때문에 오프쇼어링은 기업들이 자국에서는 용인되지 않을 사업 방식을 쓰도록 허용하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석탄 발전을 기반으로 한 저비용 제조가 좋은 예입니다. 이런 식으로 오프쇼어링은 전체적으로는 세계에 해를 끼치면서도 한 기업이나 심지어 한 국가의 국내 상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글로 쓴 바와 같이,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입니다(학문적인 요소는 훨씬 더 적은 분야지만 지정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들 분야에서 긍정적인 것만 있고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는 선택 방안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그랬던 것처럼 부정적인 것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명백해집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인 축소로 수입 원유 및 가스에 대한 유럽의 수요가 증가한 상황에서 유럽의 러시아산 석유 및 가스 수입이 스스로를 적대적이고 방종한 국가(이 경우에는 더 심하게, 그런 개인)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해외 조달도 이와 유사하게 국가와 기업이 외국과의 긍정적인 관계 그리고 미국의 운송 시스템의 효과성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이제 세계화의 이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이 시계추(pendulum)를 다시 현지 소싱 쪽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가장 싸고 쉽고 친환경적인 공급원 대신, 아마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원에 더 높은 프리미엄이 매겨질 것입니다. 일례로 미국과 해외를 불문한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위한 신규 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소재, 부품, 완제품을 수입하는 많은 미국 기업들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공급원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독일이 12월31일을 기해 남아 있는 3개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이제 더 낮아졌으며, 2021년 말에 폐쇄한 3개 원자로를 재가동할(그리고 어쩌면 나머지 유럽 국가들과 함께 에너지 수입과 국내 에너지 생산 간 균형을 다시 맞출) 가능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시계추(pendulum)가 한동안 계속해서 제가 예측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화는 전 세계 GDP, 세계화의 경제적 수혜국들, 해외 구매로 비용을 절감한 기업들에게 이익이 돼 왔습니다. 세계화 반대 방향으로의 시계추(pendulum) 이동은 이런 면에서는 아무래도 전보다 불리한 일이겠지만, (a)수입 기업들의 소싱 안정성을 개선하고 (b)국내 생산 기업들의 경쟁력과 국내 제조업 일자리 수를 증대하며 (c)이행 과정에서 투자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계추(pendulum)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계화에서 온쇼어링 방향으로 움직일까요? 그 답의 일부는 현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그리고 일부는 믿을 수 있고 안정된 소싱의 필요성과 저렴한 소싱에 대한 욕구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경제학과 지정학 같은 복잡한 분야에서 쉬운 결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선택이 있을 뿐이며 이 중 다수가 매우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 너무나 많은 미지의 요인들, 너무나 많은 장단점들이 있습니다. 저울의 양쪽에 위치한 것들이 반드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보는 시각과 결정에 있어서의 비중이라는 측면에서 시계추(pendulum)는 격렬한 왕복 운동을 합니다.

아래는 금융시장 규제를 둘러싼 시계추(pendulum)의 진동에 관해 제가 ‘규제에 관하여’에서 기술한 내용입니다.

자유시장과 규제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의 정치적·철학적 편향의 위력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자유시장이나 철저한 규제 체제 중 어느 쪽도 영구적으로 선택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입장도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며, 시계추(pendulum)는 범위의 한쪽 끝을 향해, 그리고는 다시 다른 쪽 끝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일 것입니다.

‘자유시장’과 ‘규제’ 대신에 ‘오프쇼어링’과 ‘국내 소싱’이라는 단어를 대입하면 이 문구는 가장 저렴한 소싱과 가장 안전한 소싱 사이의 선택을 똑같이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고 영구적인 해결책의 이러한 부재는 시계추(pendulum)의 특징이며, 그것이 시계추(pendulum)가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 세계화와 비용 최소화가 진행된 지금, 저는 우리가 조만간 믿을 만한 공급을 향한 시계추(pendulum)의 진동에서 투자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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